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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북교회

장애인에 대한 시각변화와 제언

2013.03.21 08:22

길라잡이 조회 수:1024

장애인에 대한 시각변화와 제언 

 

올해 2월 28일, 엄마를 따라 진주에 갔다. 어느 교회당에서 1주일에 한 번씩 개최되는 ‘밀알 복지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역시나 …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름의 방식으로 찬양도 하고 기도도 했다. 과연 예배가 될 것인가 하는 나의 판단은 선입견이자 편견이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 나는 미리 식당에 내려와 준비하며, 봉사하였다. 상당한 분들이 손이 불편하여 숟가락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음식 대부분을 젓가락으로 감아 먹었다.

 

도움을 주기 위해 갔지만, 막상 도와줄 것이 거의 없었다.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특별히 못 하는 것도 없었다. 예배도 식사도 방식에서 단지 나와 다를 뿐이었고, 내가 한 번 만에 할 것을 이들은 여러 번에 걸쳐서 함으로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었다.

 

최근 서울에서 미팅 과정에 정보통신대 남학생들이 특수교육과 여학생들에게 장애인 흉내를 내며 자기소개를 하게 함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내 주변에도 자신이 보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장애인이냐?”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러나 언젠가 국어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우리는 아직 장애인이 되지 않은 ‘비장애인’일 뿐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모두 어떻게 보면 ‘미래의 잠재적 장애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우리는 모두 현재 한 가지 이상 다 장애를 가진 자들이다. 따라서 장애인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그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처럼 한 가지 정도에 불편함이 있을 뿐이다.

 

캐나다의 총리를 3번이나 역임한 장 크레티앵(Jean Chretien)은 선천적으로 한쪽 귀가 안 들리고, 안면근육 마비로 입이 삐뚤어져 발음이 어눌했지만 “저는 말은 잘 못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는데, 이분의 말처럼 어쩌면 비장애인 - 육체적으로 비장애인이나 마음의 장애인인 우리가 못하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나는 그날 이후 장애인 봉사를 내가 도와주었다기보다는, 도리어 나 자신이 그들에게 배우고 왔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말이다. 오히려 이렇게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 살면서도 감사하지 않고 더 노력하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인간은 모두 약점과 부족이 있게 창조되었는데 이는 서로 보완하고 상호 협력하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인간답게 살 수도 없고 보람과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점이 신의 선물이라면 약점 또한 신의 선물이다.

 

이제 장애인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졌으면 한다. 온전한 인간은 없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조금 불편함이 있어도 여전히 나와 똑같은 감정과 인격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대하느냐가 개인으로서도 그 사람의 수준이고, 나라로서도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리라.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 의자는 물론 하다못해 돌 하나까지도 다 나름대로 필요해서 생겨났고, 그래서 나름대로 존재가치가 있다. 특히 인간은 먹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조물주께서 만물의 영장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것도 비록 그가 어떤 형태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다 나름 할 일이 있어서이다.

 

이러한 원리는 교육학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단편적인 지식을 넣어주기보다 이미 각자가 선천적으로 가진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여 끄집어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지금껏 사용해온 장애인을 ‘(동정심에서) 도와준다.’는 개념보다는 너도 약점이 있고 나도 약점이 있으니 약점 가진 자끼리 서로 도우며 협력하여 살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그들 나름 인간으로서 가진 장점을 잘 계발하여 각자의 방식대로 충분히 자존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보장하는 것이 더 필요하고 우선되었으면 한다(끝).

악양북교회(고신) 경남 하동군 악양서로 582-5 악양북교회 TEL. 055-883-8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