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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북교회

성도와 자살 문제

2008.09.13 22:10

길라잡이 조회 수:3340

  행16:27-28을 보면,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간수가 칼을 빼어 자살하려고 할 때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네 몸을 상하지 말라.”고 했듯이, 성경은 자살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구약 4,000년 역사에서 자살이 겨우 4건(이스라엘 왕 사울, 그의 병기 잡은 자, 아히도벨, 시므리)뿐이고, 신약성경에서는 가룟인 유다 한 사람 뿐이었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동시에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또한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창조와 관리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남녀가 교합한다고 해서 인간이 탄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부부는 아무리 좋은 약을 먹고 노력해도 생명을 잉태하지 못합니다. 욥2:6엔 사탄도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구원 받은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요(고전3:16), 주님이 값 주고 사신 것이며,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할 몸이기에(고전10:31),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생명을 단축하게 만드는 것 역시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요 반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타인의 신체와 생명은 물론 나 자신의 신체와 생명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적당한 운동, 적당한 노동, 적당한 휴식, 적당한 오락이 필요하며, 때로는 먹는 것까지도 절제하며 자는 것까지도 조절해야 하고 감정까지도 절제해야 합니다. 성도가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물론 자살 자체만 가지고는 지옥을 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신자가 살인할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했다고 신자가 아니라거나 천국을 못 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천국을 가고 안 가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이요 그 조건은 믿느냐 믿지 아니하냐의 문제이지, 살인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지요. 살인을 수없이 하고도 회개하고 천국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회개 안한 경우는 어떠한가? 가령 앞의 차를 들이박아 앞차에 탄 사람을 죽게 만들고 자기도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남도 죽이고 자기도 죽었는데, 지옥 갔느냐?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지요. 아니면 자기 스스로 차를 몰고 가다가 전봇대를 들이박아 죽었다고 한다면 회개할 기회가 없었는데 지옥을 갔느냐?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그 순간 이미 과거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사함 받기에, 회개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으면 이미 그 순간 구원적인 회개를 다 한 게 되기에, 그 이후 자범죄의 문제로 회개(성화적 회개)했느냐 안했느냐의 문제로 지옥을 가니 안가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신자가 자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 뒤 정황을 고려함 없이 자살했다는 그 사실만 가지고 지옥을 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가령 군인(특수요원)이 전투에서 싸우다 다 죽고 자신만 포로 되어 가는 중에, 분명히 잡혀가면 군사기밀을 불어야 하고 나라의 중대한 기밀이 폭로될 우려가 있을 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비슷한 원리에서 오늘날 가족이나 회사(혹은 회사원)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안고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과연 자살이라 할 수 있을 것인지?

 

  성경의 십계명엔 “살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출20:13에서 말하는 ‘살인’은 본래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 측에서 그 피를 복수하기 위해 하는 살인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갈수록 이런 직접적인 (보복) 살인보다는 심리적/사회적 그리고 고차원적으로 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간접적인 (보복) 살인행위가 많습니다.

 

  인간은 지혜롭기에 타인을 직접적으로 잘 살인하지 않고, 대신에 타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살하게 만드는, 이런 ‘간접적 살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직접적 살인은 체포되어 합당한 형벌을 받지만 간접적 살인은 법망(法網)에 잘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는 성도는 이러한 지능적인 작전을 절대로 시도해서도 안 되고 동시에 이러한 작전에 말려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굳이 성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살은 자신을 낳으신 부모님에 대한 둘도 없는 크나큰 죄악입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고 말들을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하직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스스로 부모보다 먼저 가려고 작정을 하고 자살을 택하는 것은 낳아서 길러서 결혼시켜 손자손녀를 보려는 부모님의 바램을 저버리는 최악의 불효입니다.

 

  인간이 살다 보면 사는 과정에 죽음에 가까운 고통이나 질병 혹은 위협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고후1:8-9에 보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으로 인해 살 소망까지 끊어”졌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극복하고 복음을 전하다 나중에 로마감옥에서 참수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앞으로 여생에 어떤 고난과 시련, 심지어 우리로 하여금 자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아넣는다고 할지라도 사도 바울처럼 기도하면서 ‘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그 고난을 잘 극복하여 하나님께서 불러 가시는 그날까지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하여 유익한 삶을 살다 가야 할 것입니다(끝).

악양북교회(고신) 경남 하동군 악양서로 582-5 악양북교회 TEL. 055-883-8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