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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북교회

수요기도회 질문(20230823)

2023.08.24 07:54

길라잡이 조회 수:28

바르게 잘 믿으려는 김 집사님의 열정을 존중하며, 어제 공적인 자리이고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충분히 대화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아래와 같이 추가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1) 맥락(배경) - 수요기도회 중 왕하19:1을 해석하면서, 히스기야가 자기 왕궁 (어디 조용하고 적절한 곳)에서 그냥 기도하면 될 것을 굳이 성전에 가서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왜 굳이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2) 이유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일곱 가지 상황에서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모든 기도를 응답해 달라는 봉헌기도(왕상 8:23~53, 대하6:12~42)에 대해, 성전 안에서 기도하든지 아니면 멀리 있어 성전에 오지 못할 상황일 때에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내가 어제 읽은 문헌이 본문과 병행구절인, 평소에도 자주 참고하는 존 길(John Gill)의 주석 이사야 37:1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and went into the house of the Lord)”입니다.

 

여기에 보면 “the temple, to pray to him there: he could have prayed in his own house, but he chose rather to go to the house of God, not so much on account of the holiness of the place, but because there the Lord promised, and was used to hear the prayers of his people(1Ki 8:29,30).”

 

성전, 거기로 그분께 기도하기 위해(갔다). (히스기야)가 자기 집에서도 기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집에 가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 장소의 거룩함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주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고, (그 장소) 거기가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왕상8:29~30, 참고).”

 

(3) 사례 - 그래서 다니엘도 (성전이 없는) 남의 나라 바벨론에서지만 (아마 시기상으로 볼때 이미 남유다가 망하여 성전마저 불타고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성전이 있던 곳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6:10).

 

(4) 결론 우리 개혁주의 표어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중심이기에, 오늘날도 집에서 기도해도 되고, 직장에서도 기도하고 일터에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이왕이면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것이 더 좋고, 멀리 있어 못 올 경우에는 교회를 생각하며 교회를 향해 기도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5) 이의 제기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교회가 다르고, 교회당은 건물인데 건물 뿐인 교회를 향해 굳이 기도하는 것은 조금 이상한 것이 아닌가,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6) 대답 같은 그릇이지만 오줌을 누기 위한 목적에서 만든 요강과 밥을 먹기 위해 만든 밥그릇은 (재료는 같다 할지라도) 용도(목적)가 다르기에, 손님이 왔는데 요강을 매매 씻어서 거기에 밥을 담아 줄 수는 없지 않겠나? 만일 그래도 재료가 같으니 아무렇지 않게 달게 받아 먹겠는가?

 

마찬가지로 재료는 같은 벽돌이고 철근으로 동일하지만,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고 그곳에서 수 십 년을 내가 예배하고, 내가 기도하고, 다른 성도들과 교제하던 곳을 단순히 벽돌이 같고 철근이 같다고 다른 장소와 같이, 그냥 건물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교회는 건물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7) 우리의 자세 -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여우가 죽을 때 고향의 구릉(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돌리고) 죽는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거나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일컬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한낱 짐승도 이러하기에 옛날  충신은 (다른 신하들의 모함을 받아) 자기가 섬기던 그 임금으로부터 사약을 받아 죽으면서도 임금이 사는 곳을 향해 절을 하고 죽는(었)다고 하잖아요.

 

이종찬 집사님이 자기는 평생 유행가를 부르지 않고 살겠다 다짐했다고 들었는데 이게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따지어 성도가 과연 유행가를 못 부르느냐(부를 수 없느냐, 부르면 잘못되었느냐)?” 이렇게 이의를 제기하기보다, 그러한 마음 자세가 하나님 앞에 소중하니 좋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의 성도가 교회를 통해 구원을 받고 복도 누리기에 우리 개혁주의가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그리고) 교회중심을 외치는데, 만일 어느 성도가 나는 평생 내가 섬기는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피치 못해 교회를 못 갈 경우에는 어디서든지 내가 섬기는 교회를 향해 기도한다!”라고 했을 때 이게 성경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볼 것이냐, 아니면 그분의 마음 자세를 칭찬해야 할 것인가?


이왕이면 교회를 향해 기도한다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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