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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북교회

  지난주일 오전예배에 평소 잘 나오시던, 한 번도 결석하지 아니하신 전직 집사님께서 보이지 아니하셨다. 오전예배 후 아내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밤을 주우려 가셔서 못 오셨다는 내용이었다.

 

  속으로 ‘아무리 그렇지만 전직 집사님께서 주일에 밤을 주우려 가셔서 되나?’ 이러면서, 그래도 걱정이 되어 점심식사 후 아들을 보내었다. “오전에는 빠지셨지만 오후예배라도 참석하시라.”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몸이 불편하고 아파서 못 오시겠다는 전갈이었다.

 

  결국 오후예배 후에 내가 직접 심방을 갔다. 이유를 물었더니, 주일에 밤을 주우려 가신 것이 아니라 앞날인 토요일에 밤을 주우려 가셨는데, 80 노인이 자기 한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불편하시다 보니 가다가 쉬고 또 가다가 쉬고 하여 거의 기다시피 하여 돌고 돌아서 높은 산까지 약 2km 정도 가셨다는 것이다.

 

  가서 하루 종일 밤을 줍고는 도저히 가져 오지는 못하니 주운 밤은 (혹시라도 지나가는 경운기가 있으면 실어다 달라 부탁하기 위해서) 그대로 산길 옆에 보관해 두고, 다시 내려오셨는데, 집에 도착하니 어둑어둑한 밤이 되셨다는 것이다.

 

  토요일 무리하셨는지 주일 아침이 되니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해서 (아침도 못 드시고) 할 수 없이 오전예배에 결석하셨던 것이다. 심방에서 돌아온 후 아내를 보내어 “집사님께서 여차여차 해서 그러니 가서 저녁식사라도 하시도록 좀 챙겨드리라.”고 부탁했다.

 

  문제는 이 집사님께서 좀처럼 빠지지 아니하셨던 지난 수요기도회도 역시 결석하신 것이다. 이유인즉 몸이 좀 회복되시니, 또 다시 수요일에 밤을 주우러 가셨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대로 있어선 안 되겠다 싶어서, “집사님, 제가 차량으로 모셔다 드리고 또 밤도 실어다 드릴 테니 절대로 다가오는 주일에 빠지시면 안 됩니다.”고 했다.

 

  그랬더니 금요일인 어제 밤에 전화가 오셨다. “내일 토요일 아침에, 주워 놓은 밤을 좀 가져다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밤 밭이 어디인지, 그리고 주워놓으신 밤 자루가 어디에 있는지 말로 인한 설명으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어, 결국 같이 가자고 해서 아침 8시에 모시고 같이 갔다.

 

  우리는 가서 그 동안 다시 떨어진 밤송이를 까고 간혹 떨어진 알은 주워서, 이미 주워놓으신 밤 자루를 차에 싣고 돌아왔다.

 

  그런데 젊은 나 역시 막상 가보니 사정은 달랐다. 여기 저기 밤송이가 떨어져 있는데, 송이를 까보니 크고 굵은 밤알이 튀어 나왔다. 밤을 까는 순간에도 사방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돈으로 하자면 얼마 되지 않지만, 돈을 떠나 ‘저렇게 좋고 맛이 있는 밤을 내가 안 줍고 내려가면 결국 벌레의 밥이 될 수도 있겠구나.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에서, 자꾸 무리하게 되는 것 같았다.

 

  마치 한 20년 전 옛날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신, 살아계시면 90세가 넘으신) 모친께서 고향에 사시다 연세가 많으셔서 포항의 형님 댁에 몇 년간 계실 때, 포항 시내에 있는 병과 박스를 모조리 주워 오셔서 아파트 앞에 모으신 일이 기억난다.

 

  형님과 형수는 ‘저것 모아 보아야 얼마 되지 아니하는데, 거기다 자식들이 얼마나 용돈을 안 주면 저런 일을 할까.’ 하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많이도 만류하였지만, 그래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하신 것 같다.

 

  모친 역시도 돈 때문에 하신 것이 아니리라. 옛날에 너무 없고 못 살 때 깨어진 병조각을 주워서 점방에 가서 생필품을 바꾼 일을 생각하시며, 저게 모으면 다 돈이고, 놔두면 버릴 것 생각하니 아까워서 할 수 없이 하셨으리라.

 

  나 역시 막상 이런 심정이 되어, 손이 찔리기도 했고 또 넘어져 옷도 배렸고 구두 안에 흙이 많이 들어가기도 했다.

 

  요는 집사님이셨다. 신고가신 운동화는 벗겨져서 운동화대로 놀다 보니, 풀숲과 풀숲 사이를 두 손으로 짚으며 기어서 다니셨다. 아예 조금 찔리는 것은 개의치 않으시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도 넘어져서 대굴대굴 몇 바퀴나 구르셨다고 한다. 돌아보니, 주일예배에 빠지신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떨어진 밤송이가 너무 많아 다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리인 것 같아, 집사님께 내려가시자고 했다. 그래도 노인께서는 여전히 까고 주우셨다. 나의 계속되는 재촉에 나중엔 밤송이 채로 자루에 담으셨다.

 

  안되겠다 싶어서 결국 몸을 부축하여 “제발 바닥을 보지 마시고 그대로 두고 갑시다.” 하며 강제로 모셔 내려왔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했던가? 보기만 하면 아까워서 그냥 오지 못할 것 같고, 그렇다면 며칠 전처럼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아서였다.

 

  나는 구두라도 신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집사님께서는 거의 몸으로 까신 것 같았다. 이렇게 하여 이미 주워 놓으신 밤과 가서 직접 깐 밤을 합쳐서 4-5자루 가득히 차 트렁크에 실고 왔다.

 

  덕분에 까는데 도와주고 차량으로 수송했다는 의미에서 가장 큰 1자루를 주시려는 것을 극구 사양하고, 1/4 자루만 받아서 가지고 왔다. 노인 집사님께서 저렇게 먼 길을 가셔서 넘어지고 다치며 고생하며 주우신 것을 내가 주는 대로 다 받는다면 천벌(?)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렇게 해서 장만한 밤을 막상 농협매장에 수매하러 가면 가격도 너무 터무니없이 약한데다 수매직원들의 고자세 때문에 이리저리 농촌 노인들이 열을 받으신다고 한다. 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안하기도 아깝고.

 

  요즈음 중국산 멜라민 파동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위정자들과 국민들이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또 고향에서 묵묵히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농민들을 우습게 여긴 부분이 있다면 반성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고 읽으시는 도회지 시민들이 계신다면, 가정에서 편안하게 밤 드실 때 아버지 어머니 같고 할아버지 할머니 같으신, 나이 많으시고 몸이 불편하신 농민들의 이러한 고생과 고충을 이해하시고, 제발 감사함으로 드셨으면 하오(끝).

악양북교회(고신) 경남 하동군 악양서로 582-5 악양북교회 TEL. 055-883-8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