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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북교회

3가지 깨달음

2014.11.12 10:06

길라잡이 조회 수:183

  (1) 교육()청 주관 학부모 문학기행으로 박경리 선생의 고향인 통영을 방문하게 되었다. 선생에 대해선 강원도에 박경리문학관이 있고, 하동 악양에는 최참판댁에서 해마다 토지문학제가 열리며, 통영에는 박경리기념관이 있었다. 너도나도 선생을 기념하고 추도하며 자랑삼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제 동피랑을 구경하고 있는 중, 문학해설가로 나선 어느 (유명한) 시인이 통영이 낳은 예술가 가운데 동피랑 밑에 김춘수 생가가 있다기에 따라 나섰다. 김춘수 씨는 내가 졸업한 대학의 교수로 오래 계셨던 분이기에, 더욱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고 꼬불거리는 길을 따라가니 구석진 어느 대문 앞에 아주 조그마한 표지판이 하나 있는데, “대여(大餘) 김춘수 살았던 곳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대여라는 호를 미당 서정주께서 직접 지어주셨다고 했다.

 

  조금 있으니 어느 분이 오토바이를 그곳에 주차해야 한다며 우리를 비키라고 하더니만, 표지판을 가리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본 해설가는 이것이 우리 문학의 현실이자 현주소라 했다. 시인의 측면에서 보자면 대여는 한국 시의 교과서이자 FM이며 현대 시의 모든 것이 이분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정도이지만, 이 어른이 오직 시에만 몰두했지 사람과의 관계를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 번은 생전(말년)에 자기 역시 이 어른 집을 방문했는데 멀리서 찾아갔지만, 음료수도 한 잔 대접 안 하고 마치고 나올 때 대문까지도 나오지 않고 방에서만 인사하고 그냥 작별하더라며, 인간적으론 매우 몰인정하고 섭섭한 분이라 했다.

 

  문학계에 작품이 탁월하지 못해도 사람(권세가와 동료와 후배들)과의 관계를 잘하면 인정받고 사후에도 곳곳에 기념비가 세워지는 현실에 비해, 김춘수는 시적인 재능과 끼친 영향력(공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그의 냉정한 삶의 모습이 제자들은 물론 많은 문학도에게 등을 돌리게 하고, 그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서 내가 이러한 현실은 비단 문학계만이 아니라 어디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다 있다고 했고, 나아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예술가 역시 재능만으로는 안 되고 예술 역시 인격에서 나와야 하기에 그의 인격과 삶마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 과거 대학원을 다니면서 그리고 목회 초년기에 목회자나 직분자 자녀 중에 대학원을 들어온 동기들을 보면서 왜 저리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 친구들이 똑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신앙생활에도 별 열정이 없는가?” 하며 우습게 여기거나 비난 투로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다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서는 이런 동료들이 대형 교회를 담임으로 맡기도 하고, 아니면 점점 두각을 나타내며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는 한편으론 시기심도 생겼고 다른 한편으론 불평도 하였다.

 

  그러나 더 세월이 흘러 나의 자식이 중고등학교 혹은 대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지난날의 내 생각과 자세를 반성하게 되었다. 나의 부모는 과거 술과 담배를 하며 경로당에 가서 화투 치고 싸우며 놀 때, 기껏해야 돈 벌기 위해 농사지으며 땀 흘릴 때, 이 친구들의 부모는 (지금의 나처럼) 자식은 물론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며 절제하며 경건하게 살았을 것으로 생각하니, 다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당사자 본인들도 어릴 때부터 성경도 읽고 기도하고 설교 들으며, 각종 헌금도 하고, 부모를 도와 교회를 봉사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 또한 하나님 경외하며 바르게 살려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비록 우선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좀 부족한 것처럼 보여도 장차 더 잘 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3) 수능일이 내일모레로 다가왔다. 요즈음 대학을 들어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이다. 정시로 들어가는 학생, 수시로 들어가는 학생, 수시 중에도 내신성적, 논술, 특기, 장애나 경제적인 혜택, 등 다양하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명문대에 들어가려고 야단인데, 사실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 생각한다.

 

  과거에 도올 선생께서 일류대 턱걸이로 들어가는 것보다 이류대 수석이 낫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분의 의미는 턱걸이로 들어가는 것은 마치 40kg 역기를 드는 것과 비슷하고, 수석으로 입학하는 것은 4kg 아령을 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역기는 겨우 힘을 내어 어쩌다 1번 드는 것으로 충족하지 그 역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아령은 손으로 잡고 돌리기도 하고 던지기도 하고 온갖 묘기를 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에 부치는 대학을 가서 공부만 해도 따라가기 어려운 그런 학창 생활보다, 내 수준보다 약간 낮은 대학을 가서 장학금도 받고 수석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며 교수와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며 생활하는 것이 나중에 더 나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우리 아들을 보니 이 말도 맞는 것 같다. 여러 형편상 원치 아니한 대학을 가게 되었기에 처음엔 안 가려고 발버둥 치며 재수하겠다고 떼를 썼지만, 간곡히 설득하여 등록하게 하였다. 그러나 각종 MT와 입학식까지 다 빼먹고 1학기만 하고 2학기엔 반수하겠다던 아들이 이제는 이 학교가 좋다. 재수 안 한다. 이 학교 잘 왔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자기 본래 수준(기대치, 능력?)보다 조금 낮은 대학을 가니 좋은 점이 얼마나 많은지! 첫째는 장학금, 학비 보조금, 과외, 등을 통해 돈이 거의 안 든다는 것이고, 둘째는 각종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두각을 나타내다 보니 친구들로부터 인정받기에 대학생활이 즐겁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나와도 누구는 교수하는가 하면, 누구는 교사하고, 또 누구는 9급 공무원, 그냥 시장에서 장사하는 경우까지 생긴다고 본다.

 

  수능을 앞둔 고3들이여, 인류대라는 간판보다 자기 적성에 맞는 학과를 잘 선택해야 하고, 나아가 어느 (학교) 학과를 선택하든지 간에 그곳에 입학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여 (간판이 아닌) 실제 실력을 겸비한 대학생활이 되기를()!

악양북교회(고신) 경남 하동군 악양서로 582-5 악양북교회 TEL. 055-883-8336